사단법인 노숙인복지회

3번째 이야기

2004년 11월 29일, 화요일

 

● 우리집 식구 이야기 | 그래도 아직 미래가 남아 있잖아요!

이현주 (열린여성센터 상담원, 사회복지사)
 


어느 화창한 유월, 윤숙이라고 밝힌 어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은 아이가 네 명인데 지금은 포천의 모자

보호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포천에서는 도저히 취업을 할 수가 없어서 서울의 텔레마케팅 회사에 취업이

되어 서울로 가야 하는데 혹시 그 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다급한 상황인 듯 하고 마침 이층의

모자 쉼터 용 방도 비워있던 차에 일단 방문을 하라고 하였다. 나는 윤숙 씨를 처음 보았을 때 매우 놀랐다.

서른넷의 나이 보다 훨씬 많이 들어 보이는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넷이나 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넷이라는 말을 전화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을

4명이나 매달고 온 윤숙씨를 보고 속으로 많이 놀랐다. 아이들은 모두 아이들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매력적인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11살이라는 여자아이의 무언가 슬픈 듯하기도 하고 우울한 듯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체념한 듯해 보이는 참 이쁘면서도 복잡해 보이는 그 눈빛만으로도 그 간의 험난한 가족들의 생활이

느껴지는 듯 했다. 거기다가 참 어쩌다가 이 어려운 세상에 아이를 네 명씩이나 낳았을까하는 민망함도 있었다.

윤숙씨와 아이들 넷이 생활할 비좁은 방을 보여주었다. 새로 도배도 하고 커튼도 달고 작지만 약간의 가구도

새 것으로 준비했지만 책상 하나 놓을 수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고아로 자란 윤숙씨가 스물네살쯤 되었을 때,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업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언니가 만삭이

어서 대신 업소에서 아가씨 관리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가씨 관리하는 일이

남자들과 싸우기도 하는 등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서 몇 번이나 업소일을 그만두고 뛰쳐나오고 싶었든 윤숙씨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다가왔던 한 20대 후반의 청년이 같이 살자고 하는 말에 동거를 시작했고, 업소 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선원이었다고 한다. 결혼 후 윤숙씨는 병드시고 홀로되신 시아버지를 모시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려 했으나, 그녀의 남편은 그칠 줄 모르는 노름으로 생활비는커녕 시아버지의 약값도 보태주지 않았다.

윤숙씨는 병든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붕어빵, 호떡장사와 식당 등에서

일하며 윤숙씨는 근근이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나 남편의 끊임없는 폭언과 부부관계를 거절하면 칼로 위협하며

폭력을 가하는 남편, 그런 남편과 더 이상 가정생활 유지가 가능하지 않았다. 윤숙씨는 남편과의 이혼을

원했으나, 그녀의 남편은 이혼을 원치 않았다. 결국 윤숙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쉼터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는 쉼터 생활은 아이가 많은 윤숙씨에게는 보통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혹시나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쉼터 식구들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다른 아이들과

싸우지는 않는지, 걱정이 많다. 그러나 윤숙씨는 쉼터에서 식구들과 실무자에게 고마움도 느낀다. 때론 아이들도

돌봐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 격려를 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윤숙씨는 “아빠랑 같이 살지 않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큰딸에게 안쓰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아이들

에게 좋은 부모상을 심어주고 싶었든 윤숙씨의 마음은 아려오기 시작한다. 혼자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숙씨는 오늘도 일터로 향했다. 그러나 때때로

역량 부족으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아이들 양육, 교육, 이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힘겹고,

벅찬 것이다. 이런 윤숙씨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노동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우리 쉼터에서도 두 명의 직장체험 연수생을 채용할 수 있었다. 이 두 명의 연수생은

아이들의 방과 후 교실을 담당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오랜 기간 불안정한 생활로 인한 학습부진을 만회할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아이들의 학업성적은 몰라보게 향상됐으며, 태도 또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참여했든 방과 후 교실,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이들의 낙이자 즐거움으로 변하여 손꼽아 방과 후 교실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방과 후 교실은 아이들의 학습 지도뿐만 아니라, 박물관 견학, 도서관 방문, 문화공연

등을 겸하고 있어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지원하겠다는 한 사업가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아는 사람 소개로 우리 쉼터를 방문하고

아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기꺼이 결연후원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윤숙씨는

그동안의 힘겨움을 말끔히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달프고 힘겨웠든 어린 시절, 희망이 없어 보였든 미혼 시절, 결혼 후 남편의 노름과 폭력으로 가정생활이 파탄

되어 혼자의 힘으로 아이 넷을 키워야 하는 윤숙씨는 이곳 우리 쉼터에서 비로소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이 세상은 아직도 어려운 이웃에게 빚이 되어주는 분들이 많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윤숙씨, 그녀는 다짐한다.

“열심히 일하여 아이들과 함께 임대아파트를 마련하겠다”고. 나는 윤숙씨에게 마음속으로 외친다. 파이팅!

장합니다! 계속 힘내세요! 당신은 해낼 수 있어요! 우리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어 한번 크게 웃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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