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6호 (2005.05.09)

‘우리들의 좋은집’을 열며...


요즘처럼 계절이 바뀔 때에는 식구들의 건강도 걱정이지만, 특히 마음의 건강이 더 걱정이 된다.
특히 부슬부슬 봄비가 오는 날에는 예민해진 식구들끼리 다툼도 생기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빈대떡을 부쳐 먹으며 분위기를 살려 보기도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날씨 따라 심란하기만하다.

그런 어느 날 식구 하나가 자청하여 방문을 두드리며, “있잖아요, 제가 다 말씀 드릴께요”하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도 날씨 탓에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심란한 것이다. 약간의 말더듬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항상 긴장하는 그녀, 깊은 한숨을 쉬며 그 동안 깊이 담아왔던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전라도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혼자서는 딸 둘을 키우기 어려워 9살에 남의 집에 가정부로 보내졌다.
처음에 갔던 집은 비교적 잘 대해 주어서 초등학교도 다니면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다른 집으로 보내지면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글도 다 깨우치지 못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계속 남의 집을 떠돌며 생활하다가 하숙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던 스물 여덟의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우연히 옛날 고향어른을 만났고,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삶이 어려워 어머니와 친지의 소개로 남의 집 씨받이를 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아서 빼앗겼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고향을 등지고 건설현장 함바집, 식당 등을 떠돌며 살다가 무릎을 다친 후에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친지의 집에서 몇 년 동안 월급도 없이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며 얹혀 있다가 그나마도 미안하여 돈 한 푼 없이 서울역에 나왔다.
서울역에서 몇 달을 지내는 동안 절박한 그녀에게, 카드신용사기단이 접근하여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주면 생활비를 주겠다고 하여 서류를 넘겨주었다가 현재는 9000여만원 빚을 진 신용불량자가 되어 주민등록증도 없어 취업도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44세가 되는 그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밥을 못 먹어 굶어 죽는 아이도 있으니 국민소득 2만불을 외치는 시대가 믿겨지지 않지만....

여성들이 노숙하는 사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이는 평생 숙식을 제공하는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IMF때 직장을 잃었다가 재취업이 안 되어서, 또 어떤 이는 보육원을 나와서 자립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시설들을 전전하다가 공동체 생활에 부적응하여, 또 어떤 할머니는 자식들과의 불화로 양로원에 갔으나 적응을 못하여 거리로 나와서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거리 생활을 하는 경우,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하여 집을 뛰쳐 나왔으나 막상 누구한테도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

여성노숙인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고 절망의 저 나락 끝에선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울타리가 될만한 가족은 없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거리 생활의 위험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은 우리 사회 누구보다도 절박한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여성이 겪게 되는 위험은 너무나 많다.
남성으로부터의 폭력과 성폭력, 취업을 미끼로한 카드신용사기 등 각종 사기, 특히 정신지체 여성의 경우에는 무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등 피해사례가 너무나 많다.

이런 위기의 여성들이 응급상황에서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우리들의 좋은집’이다.
좋은집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다.
여성재단에서는 여성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거리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위한 모금부터 설치까지 모든 기획을 도맡아 해주셨고, 여러 기업들을 뛰어다니며 설치기금을 조성해 주셨다.
특히 한화그룹에서는 여성노숙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흔쾌히 1억을 기부해주셨고, 한화건설에서는 1200만원을 들여 TV등 전자제품도 사주시고, 집을 예쁘게 꾸며주셨다.
새로이 집을 열다보니 냉장고부터 장롱, 이불 등 온갖 생활용품을 마련해야 하는데 PBMS의 론가우드 사장님의 도움으로 수월히 마련할 수 있었다.

민간단체와 민간기업의 도움으로 새로이 열게 된 좋은집이 위기상황의 여성들이 응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아서, 거리생활이라는 상처를 받지 않고 사회의 도움으로 안정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열린여성센터
Tel : 02-704-5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