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6호 (2005.05.09)

● 언제.. 달라진 걸까?

강 주 현


미루고 미루었던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큰 맘먹고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미련한 욕심에 입지도 않으면서 쌓아두었던 옷가지들을 빨고 종이가방에 담아 아주 오랜만에 열린여성센터에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여전해 보였습니다.
작은 간판, 복잡한 마당, 널어놓은 빨래들..

실무자들과 쉼터 식구들과 분주히 인사를 하고, 가지고 온 옷을 풀어 입혀보기도 하고 마당의 텃밭에 고추와 토마토 모종 심는 것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거기서 보냈는데, 웬지.. 그곳에 살고 있는 여성노숙인들이 예전과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얼마전까지 거리노숙인을 돕는 일을 해왔던 터라 열린여성센터가 개소할 때부터 입소한 쉼터 식구들은 거리에서 생활할 때부터 보아왔습니다.
개소 초기, 이런저런 일로 그곳을 방문할 때 만난 그들은 대개 무기력하게 방안에 앉아있거나 산발한 머리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아예 고개를 돌리거나 눈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거리에서 생활할 때는 그보다 상황이 더 심했습니다.
남성노숙인들에 맞아 눈두덩이가 늘 부어있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정신질환이 있는 어느 여성은 지저분한 옷과 머리모양, 이상한 행동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질색하게 만들곤 했었으니까요.

그러던 그들이.. 어제는 많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늘 불도 켜지 않은 채 방안에 앉아 있던 그녀가 집안 여기저기를 분주히 다니며 쓰레기 분리를 잘 하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하며 시범을 보입니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밝은 표정입니다.
차마 뭐라 형용할 길 없을 만큼 산발한 머리의 그녀는 단정히 커트를 하고 심지어(!) 머리도 감은 것 같았습니다.
하얀 얼굴에 늘 기운없다고 호소하던 다른 식구는 오늘 자활근로를 다녀왔다며 뿌듯한 모습으로 자랑을 합니다.
치는 파워로 쉼터 식구들과 다툼이 잦았던 터줏대감 그녀도 평온한 모습으로 알뜰하게 고추모종을 심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문광고에 나오는 Before/After처럼 그들의 변화는 확실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는 늘 의문입니다.
그러나 생존과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안정적인 의식주, 지지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시간과 기복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한다는 것을 열린여성센터 식구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기까지 소장님과 실무자들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봉사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생각해 보았더니... 상상이 잘 안됩니다.

시간이 늦어 인사를 하고 문 밖을 나서니 천진한 표정으로 식구들이 잘가라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열린여성센터가 늘 지금처럼 그녀들의 버팀목으로 건재하면 좋겠습니다.
더디지만 매일 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들이 열린여성센터를 능히 지켜낼 것 같습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열린여성센터
Tel : 02-704-5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