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성노숙자 성폭력 인권피해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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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숙자(빨간 점퍼) 무엇인가를 사들고 남성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여성 노숙자가 다가가자 남성 노숙자는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사진= 정영일 기자
“두 분이 친해보이시네요?”(기자)
“친해. 짝궁이여 짝궁.”
지난 20일 밤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자 조 아무개씨(63, 서울역 노숙 10년)는 옆에 있던 여성 노숙자 정 아무개씨(25, 정신장애 2급)를 ‘이쁜이’라고 불렀다. 정 씨는 조 씨를 ‘삼춘’이라고 불렀다.
유난히 다정해 보이는 이 둘은 어떻게 ‘짝궁’이 됐을까? “얘가 정신장애 2급이야. 서울역 젊은 놈들은 어떡하면 말 한 번 걸어볼까 한 번 건드려볼까 난리지. 내가 없으면 서울역 젊은 놈들은 하나같이 얘를 그냥 안둬. 그래서 서울역 젊은 놈들에게는 내가 눈엣가시야.” 조씨가 혹시 있을지 모를 성폭력 위협으로부터 정 씨를 지켜준다는 것이다.
올들어 여성 노숙자 급증
올 들어 여성 노숙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전국 각지의 여성 노숙자 쉼터에 집계된 여성 노숙자는 2백33명으로 지난해 말 1백78명에 비해 31%나 급증했다. 게다가 집을 나온 대부분의 여성 노숙자들이 길거리 노숙보다는 피씨방, 교회 철야 예배당, 사우나 등에서 노숙을 하고 있어 실제 여성 노숙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 여성 노숙자들 특히 정 씨 같은 정신장애를 가진 여성 노숙인들은 성폭력의 대상이 되기 쉽다. 힘을 앞세운 남성 노숙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 씨는 말한다. “여긴 주먹이 가깝잖아. 12시만 넘으면 순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위험요소가 널려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 없잖아” 또 다른 여성 노숙자 김 아무개씨(경기 월운면)는 “남자들이 제일 위험하다. 어제도 여기서 밤새려는 데 남자들이 협박하고 옷도 잡아당기고 그랬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 씨 같은 이들이 여성 노숙자 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 노숙자 쉼터 관계자는 “대부분의 여성 노숙자 쉼터는 자활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 노숙자들은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쉼터에 들어와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귀띔한다. 공동체 생활을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체조하고, 돌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는 등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쉼터를 떠나는 이들도 상당수라 한다.
여성 노숙자 전용 시설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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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소장은 이들을 위해 여성 전용 드롭인(Drop_In) 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 소장은 “드롭인 센터는 자기 삶에 대한 고집이 강한 노숙자들의 생활을 존중해 주면서도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식사, 세탁, 하룻밤 숙식 등의 서비TM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서 소장은 드롭인 센터가 여성 노숙자 쉼터로 가는 중간 다리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여성 전용 드롭인 센터는 한화그룹의 지원을 받아용산구 서계동에 시설 한 곳을마련 중이다.
대부분의 여성 노숙자들이 아이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서정화 소장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체 여성 노숙자 중 40%정도는 아이를 동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 노숙자 중 많은 사람들이 가정 폭력을 피해 도망나오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을 두고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여성 노숙자들에게 양육비나 교육비 지원은 하나도 없다. 시설에 입소하는 순간 시설지원을 분류돼 기초생활보장 수혜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센터 입소 전에 길거리 노숙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정서적 문제도 심각하다. 서정화 소장은 “현재 주 2회 정도 미술치료를 실시하고 있고, 방과후 교실을 통해서 별도의 학습지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이 센터에 정착하고는 아이들이 많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학습에 있어서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서 소장은 센터에 입소한 아이들 중 학교에 다니는 4명의 아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현재 센터의 경우 80%정도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강경희 한국여성재단 사무총장은 “정부의 예산이 소프트웨어에 치중돼 있다. 정작 필요한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한다. 쉼터에서 여성 노숙자들이 먹고 사는 것은 정부의 지원으로 하지만, 더 많은 쉼터를 짓거나 새로운 드롭인 센터를 세우는데 드는 예산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여성노숙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기초시설에 더 많은 지원을 기울여야 한다는대목이다.
<참고: 드롭인(Drop-In) 센터는 세탁, 목욕, 1일 숙박 제공 등을 노숙자들에게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곳. 일정한 곳에 오래 기거하는 것을 싫어하는 노숙자들의 삶의 패턴을 반영한 노숙인 보호시설이다.>
정영일 기자 bawu@ngotimes.net